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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대흥엿방 - 50년간 전통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 - 경상북도 안동시 옥야동 345-2
  • - 1969년 창업(1968년 안동시 식품제조 영업허가 제1호 등록)
  • - 경상북도 향토뿌리기업 선정

안동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대흥엿방

국민 간식이었던 엿이 경제가 발전되고 다양한 간식거리가 생기면서 조금씩 잊혀가는 식품이 되었다. 그러나 이곳 안동에 당시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엿방’이 있다. 1962년 안동시 안흥동에 문을 연 ‘대흥엿방’이다. 세월의 바뀜에 따라 안동에 하나 남은 엿방인데, 김영욱(67세) 대표의 부친 김용백(작고) 옹이 처음 문을 열었다. 1968년 6월, 대흥식품은 안동시 식품제조 영업허가 제1호로 등록했다. 안동세무서 기록대장 맨 앞장에 있을 만큼 가장 빠른 시기에 문을 연 것이다. 세무서 공식 등록은 1969년이지만 훨씬 이전에 시작했던 엿방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나라 곳곳에는 아픔의 잔재인 탄피 같은 고철이 많았다. 그것을 모아 재처리해 나라의 근본인 농기구를 만들고 물을 퍼 올리는 펌프 기계를 만들었다. 농경 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화되는 디딤돌 역할은 고철을 모으는 엿장수들의 공로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렇게 모은 고철은 주물공장으로 팔려나가 현금이 되었고, 주물공장은 고철을 녹여 솥, 쟁기, 등 여러 가지 현실에 필요한 물건들을 만들어 팔았다. 이때, 지금의 김영욱 대표도 함께 가업을 도왔다.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팔을 걷어붙이고 아버지를 도와 일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잠시 군대에 다녀온 것 빼고는 온전히 엿과 함께해온 인생이었다. 제대 후, 1967년 지금의 자리인 옥야동(영호 3길)에서 아버지와 함께 직접 손으로 벽돌을 찍어 건물을 세우고 이곳으로 확장 이전했다. 그리고 2년 후인 1969년 1월에 지금 대흥엿방을 꾸려가고 있는 김영욱 대표가 사업체를 이어받는다. 아버지 김용백 옹은 영업 일선에서 비켜서 있었지만, 여전히 엿 공장에서 함께 일했다.

사양길로 접어들다

그렇게 호황을 누리던 엿공장은 8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민 생활이 윤택해지고, 부유해지면서 다양한 먹을거리가 생기자 점점 사양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대흥엿방도 이때, 폐업을 심각하게 고려했다. 그러나 부친이 살아계시고, 여전히 공장 직원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던 터라 쉽게 용단을 내릴 수 없었다. 게다가 엿공장 문을 닫게 되면 할 것이 없었다. 평생을 엿과 함께해온 인생이라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과 새로운 도전이라는 막연한 위험 앞에 미래를 맡긴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김영욱 대표는 새로운 도전보다는 안정적인 길을 선택한다. 유일한 종교는 자신에 대한 믿음뿐이었다. 그것이 희망이었다. 조금씩 업종을 현실에 맞게 바꾸기 시작했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해 쏟아내는 상품에 비해 옛날 방식을 그대로 고집하며 만들어내는 자신의 상품이 훨씬 뛰어나다는 믿음과 확신이 있었다.

전통방식을 고수하다

‘대흥엿방’ 김영욱 대표는 조선 시대에 만든 방식 그대로를 고집했다. 전통식품이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도 있었지만 남의 돈을 빌려서 운영을 하지 않았던 터라 이렇게나마 견딜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대기업에서 만들어낸 조청과 애초에 가격 경쟁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비싼 제품을 만드는 대신 더 좋은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대흥엿방은 이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건강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 건강한 먹거리를 찾기 시작하면서 입맛도 대량으로 쏟아지는 맞춤식에 싫증을 내기 시작했다.

옛날 방식을 고수하다 보니 대량 생산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러나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이것이 지금의 대흥엿방이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한때 우리나라 대기업에서 사람을 파견하여 기술을 전수받고 간적도 있었다. 닫힌 사고라면 상상도 할 수 없었겠지만, 할 태면 해보라는 식이었다. 그만큼 제품에 자신이 있었다.

대흥엿방에서 생산되는 조청

이처럼 단골이 늘어나고, 전통 방식의 조청을 찾는 사람도 많이 생겼다. 가업을 자식에게 물려주고자 하는데 현재 대기업에 다니는 사위를 설득 중이다. 기존 사업장으로 충분하다는 판단이지만 본인이 기술을 알아야 중소기업으로 발돋움시켜 잘 꾸려갈 수 있다. 아무쪼록 대흥엿방이 조청의 맑고 진한 맛을 유지하면서 오래도록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기를 바란다. 그동안 전통방식을 고수하며 힘들게 이어온만큼 이곳의 앞날에 희망이 가득하기를 기원한다.